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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파속 인천의 거리

집필/새로운 소설

by 뚜뚜 DDUDDU 2022. 6. 2. 0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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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위와 쓸쓸함에 허우적대면서 한 해가 지나갔다. 외로움을 이기기 위해서는 누구든지 만나야만 했다. 연말의 바쁜 업무들이 마무리가 되어 감에 따라서 친구들과의 만남이 잦아졌다.

 

 

주말에는 때때로 대낮부터 혼자 길거리를 걸어 다니곤 하였는데, 오히려 그 편이 내 영혼에 휴식을 안겨주었다. 2월 막바지의 겨울이 내뱉는 한파가 거세게 도시를 얼어붙게 만들었지만 주말이 되고 그 날씨에 굴하지 않고 여느 때처럼 길거리를 걸었다. 일단 아무런 계획없이 나오긴 하였는데 하염없이 걷기 위해서는 적어도 어디로 갈 지 목적지는 필요했다. 이럴 때는 주로 구월동 또는 부천역에 있는 교보문고를 목적지로 선택했다. 이번엔 구월동의 교보문고를 목적지로 정했다.

 

 

한참을 걸어 다니다가 추위를 식히기 위해서 서점 안으로 들어섰다. 넓은 서점 내에는 분야별로 수많은 책들이 가지런히 정렬되어 있었다. 서점 내에서 나의 흥미로운 구경거리는 책뿐만 아니라 책을 읽는 사람까지도 포함되었다. 서점을 한바퀴 쭉 걸어 다니며, 사람들이 몰리는 구간의 책들이 어떤 종류인지 살펴보면 최근 어떠한 내용들이 이슈가 되고 있거나, 어떠한 분야가 대중들의 이목을 끌고 있는지 조금이나마 느껴졌다. 흥미롭게도 요즘엔 다양해진 돈벌이 수단과 관련된 서적들에 눈길이 모이고 있다. 직장인 부업과 수익창출, 사업을 위한 지식들과 관련된 책들이 10억을 쉽게 벌 수 있다는 투의 자극적인 제목들과 함께 베스트셀러 진열대에 위치하고 있었다. 특히 재테크와 관련된 책들이 꾸준하게 사람들을 집중시켰다. 몇몇 젊은 사람들이 가만히 서서 불편한 자세로 재테크책을 훑어보고 있었다.

 

 

누군가가 직장인이 되면 가장 먼저 재테크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얘기한 바가 생각났다. 나 역시 이 분야에 관심이 있던 터라 진열되어 있는 책들 중에서 빨간 표지로 이목을 끄는 책을 한 권 집어 들었다. 잠시 책을 펴서 대충 훑어보았지만 잘 모르는 용어들이 나오고 내용이 복잡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한 권 정도는 사볼까 싶었지만 아직은 쌓아 둔 돈이 몇 푼 되지 않아서 굳이 재테크를 할 필요가 없었고, 미지의 내용이 담긴 책을 읽으면 머리만 아프겠거니 해서 나중에 사서 보기로 했다. 재테크 구역을 벗어나서 서점에 있는 젊은 여자들을 힐끔 구경하다가 디자인 관련 분야의 책들이 있는 구역에서 흥미롭게 보이는 책들을 발견했다. 그 중에서 색상과 글자, 그리고 그림을 아름답게 조화시켜서 보는 이에게 빠르고 명확하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기법이라는 인포그래픽이라는 분야가 나를 책 속으로 빠져들게 만들었다. 아마도 회사에서 각종 보고 자료를 만들 때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 관련된 책을 한 권 구입했다. 한 시간 정도를 서점 안에서만 서있다 보니 좀이 쑤셔서 다시 서점을 나와서 길을 나섰다.

주변의 높은 빌딩들이 밀집해 있어서 건물 벽을 타고 찬바람이 더 거세게 몰아치는 듯해 보였다. 차라리 따뜻하고 두꺼운 점퍼를 입고 나왔으면 좋았을 텐데 괜히 최근에 샀던 코트를 자랑하고 싶어서 무리하게 입고 온 것이 후회가 되었다. 두 손으로 코트 반대편을 움켜잡고 당겨서 추위를 최대한 방어한 다음 빠른 걸음으로 전철역을 향하였다.

 

 

몇 정거장을 거쳐 부평역에서 내려선 다음 일단 식당을 찾아보았다. 부평역사는 마트가 있는 큰 건물로 이루어져 있었다. 마트에서 간식을 조금 사다 먹을지 주저하다가 결국 지하 개찰구를 지나서 계단을 따라 올라왔다. 바람소리만 차갑게 들려오는 얼어붙은 역 앞의 광장이 눈 앞에 펼쳐져 있었다. 식당가로 가려면 저 넓은 광장을 지나서 큰 길을 건너가야만 했다. 주말인지라 밖으로 나들이를 나온 그리 많지는 않은 사람들이 거리에 몰려 있었는데, 추위때문에 몸을 웅크린 자세로 각자의 길을 빠르게 걷고 있었다. 부평에서 복잡하기로 유명한 지하상가를 통과한 뒤 식당들이 빼곡히 위치한 방향의 출구로 올라왔다. 배가 고파지면 뭐든지 맛있어 보이기 때문에 어떤 식당으로 들어갈지 고민하다가 추워진 날씨에 얼어붙은 몸을 녹이기 위해서 순두부찌개를 먹기로 결정했다. “어서오세요.” 인자해 보이는 아주머니에게 인사한 뒤 얼큰 순두부찌개를 한 그릇 주문한 다음 자리에 앉아서 유리창 밖으로 보이는 겨울 경치를 바라보았다. 아직 지난주에 내렸던 눈이 녹지 않아서 길거리 이곳 저곳에 얼어붙은 눈덩이들이 조금씩 쌓여 있었다. 흙과 먼지가 얼어 붙어있는 눈덩이들의 새하얀 피부를 까맣게 더럽혀 놓아서 마치 검은 잿더미처럼 보였다.

 

 

몇몇 지나가는 사람들은 온통 기다란 패딩 점퍼를 입은 채로 길거리를 활보했는데, 옷에 관심이 많은 해찬이의 말에 의하면 내가 보고 있는 그 점퍼가 최근 유행하는 스타일의 롱패딩이라고 들었다. 온통 검정색의 그 것을 입고 있어서 마치 동일한 기종의 검정색 로봇들이 길거리에 떠 다니는 것 같아 보였다. 하늘에서 낚시대를 던져서 누군가를 낚아 올린다면 10명의 사람을 건져 올려도 똑같은 모습을 가진 사람만 걸려 올라가서 금세 지루함을 느낄 것이 틀림없었다. 드라마나 TV 프로그램 혹은 패션과 관련된 어떤 매체들이 지금 보고 있는 패딩 점퍼가 가장 멋있는 옷이라고 사람들의 뇌에다가 속삭였을 것이 틀림없었다. 도대체 어떠한 방식으로 그들에게 속삭였는지 궁금해하고 있는 중에 주문했던 순두부찌개가 내 앞에 놓였다.

 

팔팔 끓고 있는 순두부찌개의 국물을 조심스레 떠먹어 보니 자극적이지 않아서 내 입맛에 딱 맞았다. 조미료가 많이 들어가서 자극적인 맛을 풍기는 음식을 많이 먹으면 이상하게 배가 아파왔기 때문에 그런 음식은 몸에서 거부 반응이 나곤 했다. 반면, 지금 내 앞에 놓인 이 순두부찌개는 은은하게 향과 맛을 전달하고 있으면서 양도 생각보다 풍족하게 나왔기 때문에 매우 만족했다. 이 식당의 이름과 장소는 머리속에 저장해 두어서 친구들에게도 추천을 해 줘야겠다고 다짐했다. 순식간에 뚝배기를 비우고 난 뒤, 부평역 근처에 위치한 일본어 학원들을 살펴보고자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타지 않고 주변을 다시금 걷기 시작했다.

 


 

일을 하면서도 딱히 걱정거리가 없었던 이유는 작업자들은 내일 일에 대한 걱정은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일 일은 내일 걱정하면 되었다. 일에 대한 염려를 퇴근 후 집까지 가져올 필요가 전혀 없었다. 아름다운 건설현장으로의 출퇴근은 학업에 열중하기 위한 사정 때문에 어느 순간부터 발을 떼었는데, 그렇다고 해서 우리는 헤어져서 아쉽다거나 서운해하거나 가식적인 작별인사조차 없었다. 잠시 지나간 소나기처럼 스며들다가도 사라지는 그 편이 나았다. 하지만 지금의 일은 하루하루 연속선상에 있었다. 잠깐 왔다 가는 것도 아니고 그날 하루의 일이 끝났다고 해서 마음 편하게 쉴 수만은 없었던 이유는 내일의 일도 오늘 일의 연속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 백야의 그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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