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엔 유명인들의 사생활이 방송의 소재로써 자주 등장하는데 그런 것들이 주로 트렌드처럼 인기를 끌고 있었다. 나도 몇 번 시청한 적이 있었지만 사람들이 좀처럼 그들의 사생활에 왜 호기심을 갖고 그런 것들을 보는 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유명인들의 삶도 결코 특이한 게 없어 보였지만, 사람들은 그들이 특별하고 재미있는 경험을 하는 삶을 보여준다고 착각하는 것 같아 보였다. 즐겨보는 사람들이 얼마나 재미없는 인생을 살고 있으면 저런 모습들을 보면서 즐거움을 찾을까 하는 가엾은 감정이 들었다. 더군다나 그런 보여지는 삶들이 사실은 모조리 진짜가 아닌 것 같았다. 그들이 경험하는 더러운 일들은 당연하게도 매체에 결코 보이지 않았다. 밝은 모습을 보여줬으면 비열하거나 추잡한 모습도 보여주어야 한다. 대중매체가 대중들에게 메시지와 가르침을 줄 거면 동전의 양면을 비추어주어야 하는 것이다. 대중들은 추잡한 그들의 이면을 상상하지 않으며 어두운 면을 표면적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그것이 감춰지거나 없어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표면에 끄집어낼 때 진정한 삶의 관찰이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그저 편한 자세로 TV를 보고 있는 부모님은 아마도 귀여운 자식들이 애교를 떠는 모습들을 보게 됨으로써 자기 자신도 손주를 보고싶다는 마음이 은연중에 더 커질 것이다. 이는 곧 분명히 얼른 결혼하라는 나를 향한 잔소리로 이어질 테다.
그녀가 가끔씩 자신의 학력을 자랑스럽게 말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명문대학에 다니고 있는 그녀. 하긴 학교에서는 취업하는 방법에 대해서 알려줄지언정 사람이 살아가는 방법에 대해서 가르쳐주지는 않았다. 매 기간마다 거액의 돈을 납부하는 서민들에게 졸업장이라는 한 장의 증명서를 떼어 주면서, 굳이 필요 없는 지식과 난해하게 억지로 포장된 이론들을 알려주는 영리단체에 불과할 테니 말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대학이라는 꼬리표를 포기할 수는 없다. 공통적으로 그들 내면에는 불안감이라는 요소가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이지 않는 족쇄에 의해 얼마 벌지도 못하는 돈을 납부해야만 했다.
중식이에게 이런 인정머리 없는 곳으로 오자고 한 것에 대해서 사과를 한차례 하고 나서는 우리가 먹을 밑반찬과 샤브샤브에 들어갈 재료들을 직접 가져온 뒤, 육수에 집어넣고 끓기 만을 기다렸다.
“아까 그 얘기 계속 해봐. 괜찮은 여자애를 만났었다고 했지?” 밑반찬으로 주는 떡볶이를 입에 넣으며 내가 물었다.
“그렇지. 한선이라는 여자였는데, 2주? 아니다. 아마 3주전쯤에 술집에서 만났어.”
“술집에서 일하는 여자야?”
“아니, 아니지.” 중석이가 손을 휘젓고 웃으며 말했다. “코ㅇㅇ야라는 술집에서 그녀를 만났거든. 친구 둘과 술을 한잔 하고 있었는데 옆 테이블에서 그녀가 자기 친구와 술을 마시고 있더라구. 나는 술을 마시면서 찔끔찔끔 한선씨를 쳐다봤는데 내가 좋아하는 모습을 하고 있었어. 커리어 우먼 같아 보였는데 그 모습이 마치 자기 생활에 충실하고 매너가 있으면서도 약간 차가운 느낌의, 그런 모습 말이야. 그래서 내 앞에 있던 술을 한잔 마시고 용기를 내서 옆 테이블로 가서 그녀에게 말을 걸었어. 괜찮으신 분 같아서 그런데 연락처 좀 줄 수 있냐고.”
“많이 용감 해졌군, 우리 중식이가.”
“물론이지. 그렇지만 착각은 하지 마.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용기를 많이 내서 말을 한 거야. 매번 그렇게 번호를 물어보지만은 않아. 그 때는 어느정도 술이 만들어 주는 대범함을 잠시 빌렸던 것뿐이야. 어쨌든 그 날 그녀에게 번호를 받고는 조심히 들어가시라고 연락을 했어.”
“그랬더니?”
“한 시간쯤 지나고 나서는 답장이 온 거야. 내게도 잘 들어가시라고 하더군. 그러고는 그 후로 연락도 잘 받아주고 때로는 먼저 그녀가 연락을 하기도 했었어. 나는 바로 그 다음 주말에 그녀와 만나고 싶었는데 부모님을 뵈야 하기 때문에 부산으로 내려가야 한다며 그 다음주에 만나기를 원하더라고. 그래서 하는 수 없이 알았다고 한 다음에 마찬가지로 평소처럼 그녀와 일상적인 연락을 주고 받았어. 만나지도 않고 휴대폰으로 연락만 하다 보니 나중에는 소재도 고갈되어서 딱히 할 말이 생각나지 않는 바람에 고생을 좀 했지만 말야.”
“그래도 지금까지는 괜찮은 전개인데?” 흥미진진했다.
“그렇지. 문제는 지금부터야. 만나기로 약속한 날 이틀 전쯤인가? 내가 그날 친구들하고 술을 꽤 많이 마셨거든. 그녀에게도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있다고 연락을 했어. 그랬더니 그녀가 그냥 오늘은 나더러 술 마시고 잘 들어가라면서 내일 연락하자는 거야.”
“그래서?”
“나는 술을 마시면서 심심하기도 해서……. 형도 알지? 가끔 술 마실 때 적적한 느낌 같은 것? 그래서 그 여자에게 연락을 계속 했어. 전화를 걸기도 했어. 그랬더니 뜬금없이 그녀가 내게 앞으로는 연락하지 말라고 하는 거야. 술 마시고 연락을 하는 내가 부담스럽다고 말을 하던데 정말 황당했어.”
내가 들어도 조금은 당혹스러운 상황이었다. 그래도 궁금한 것이 있었다. “너는 왜 굳이 내일 연락하라고 여자애가 말을 했는데도 아닌 것 같다고 느꼈을텐데 계속 연락을 한 거야?”
“그냥 뭐, 그날따라 술을 많이 마셔서 그런지 모르겠는데 자꾸만 연락하게 되더라고.”
나는 곰곰이 생각해 봤다. 아마도 계속된 연락에 부담을 느낀 것 말고는 다른 이유는 없는 것 같아 보였다.
“글쎄, 그 정도 이유에 화가 나서 연락하지 말라는 그녀도 우습긴 하지만 굳이 계속 들이대던 너도 문제가 있네. 술에 취한 상태로는 웬만하면 연락하지 않는 편이 좋았을 텐데. 그것도 아직 제대로 만나보지도 않은 상태잖아. 두려움을 느꼈을 수도 있지.”
불쌍한 녀석, 좋아하는 마음이 과도한 부담을 안겼던 것뿐이었다. 너무도 순수한 녀석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가엾다는 눈으로 안타까워하는 그의 표정을 바라봤다.
“그냥 재수가 없었다고 생각해. 부담을 느꼈을 거야. 그게 아니라면 다른 남자를 만나고 있었거나, 아니면 너와 연락하는 기간 중에 다른 남자가 생겼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그저 너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그렇게 차갑게 말했겠지.”
“앞으로는 술에 취한 상태에서 여자와 연락하지는 말아야겠어.”
“그걸 이제야 깨달았어?”
“아니, 그 정도야 괜찮을 줄 알았지. 이상한 여자야, 젠장.” 중식이는 샤브샤브를 먹던 젓가락을 내려놓고는 상심에 빠졌다.
“그 후로는 별다른 연락도 없이 끝이 난 거야?”
“그때 그만 연락하자고 하길래 난 계속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녀에게 장문의 메시지를 보냈어. 내가 괜히 술 마시고 연락해서 피해를 준 것 같아서 죄송하다고 말야. 그랬더니 그냥 알았다고 하더라구. 그리고 그 이튿날에도 다시금 미안하다면서 잘 살기를 바란다고 메시지를 보내 주었지. 깔끔하게 마무리를 하려고.”
나는 깜짝 놀라서 그저 입을 벌리고 그를 바라봤다. “뭐 하러 그런 말을 해?”
“그냥, 미안한 것 같아서. 그리고 혹시 모르잖아. 이렇게 부담스럽게 연락을 했다가는 나중에 그녀가 나한테 안 좋은 짓을 할 수도 있는 거고.” 나는 기가 차서 물었다. “무슨 안 좋은 짓?”
“나중에 고소할 수도 있고, 어디에다 퍼뜨릴 수도 있잖아.”
그저 멍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내가 좋아하는 동생이 조심스러움을 넘어 이 정도의 겁쟁이로 변해 있을 줄은 생각도 못했다. 그가 평소에도 회사에서 인터넷을 통해서 남녀 관계의 이상한 사건, 사고 같은 내용들을 관심있게 본다고 말을 했었는데 역시나 언론이나 인터넷에서 그런 것들을 보면서 쓸데없는 상상력만을 키워간 것이 틀림없었다. 돼먹지 못한 망상들이 지나칠 정도로 녀석을 재미없는 놈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이 정도면 여자는 커녕 있던 친구들도 달아날 판일 것 같았다.
“말도 안되는 얘기 좀 하지 마. 고작 몇 번 연락한 것 가지고 호들갑 떨지 마. 그럴 일은 없을 테니. 억지로 연락하는 이상한 태도 좀 고치고.”
“분위기 좋았었는데. 괜히 이상한 여자를 만나서 이게 뭐람.”
“너나 그 여자나 둘 다 이상해. 그래도 고작 연락처를 받았을 뿐이잖아. 아직 제대로 만난 적도 없고. 차라리 이해심이 부족한 여자라면 애초에 그만 두는 게 더 낫지 뭘.”
“그렇지만 정말 괜찮은 여자라고 생각했거든. 너무 아쉽다. 아쉬워.” 중석이는 풀이 죽은 채 말을 이어 나갔다. “그리고 또 괜찮은 여자 한 명을 인터넷에서 알게 되었는데 거의 연락을 하자 마자 연락이 끊겼어. 사진을 봤을 때 정말 괜찮은 여자였는데 말야.”
“무슨 얘기를 했는데?”
“별 얘기는 없었어. 서로가 어디 살고, 몇 살이며 어떤 일을 하는지에 대한 얘기들을 하는 중에 내가 이런 질문을 꺼냈어. 내가 현재 지방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괜찮겠냐는 질문. 그 질문에 조금은 부담스러워 하더라고. 그리고 어떤 성격의 여자를 선호하는지 나에게 묻길래, 서로가 너무 관심을 갖는 건 부담스럽기 때문에 사생활에 터치하지 않는 여자가 좋다고 얘기를 했어.”
“멍청하게 왜 그런 말을 했어? 처음부터 부정적인 내용들에 대해서 말을 꺼내니 상대방이 당연히 거부감을 느낀 거겠지.”
“그래도 지방에서 근무하고 있다는 사실은 먼저 알려야 할 것 같아서 말을 했지. 그리고 솔직하게 말을 했던 것뿐이야.”
이쯤 되니 중석이에게서 순수함을 넘어서 멍청함까지 느껴졌다. 여자를 먼저 생각하는 기가 막힌 배려심이 없다면 훌륭한 외모를 갖지 않은 이상, 연인을 찾는다는 건 불가능 해 보였다. 무엇이 순수하고 거침없었던 이 녀석을 소심한 겁쟁이로 만든 것일까? 불편하고 눈치를 봐야 하는 회사생활이 원인일까? 아니면 흥미로워 보이지만 살면서 전혀 쓸모가 없는 인터넷과 언론속의 정보들 속에서 헤엄을 치다가 변한 것인지? 아니면 내가 모르는 또다른 이유가 있던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철저하게도 절제를 강요하고 별건 아닌 것에도 두려움에 떨게 하여서 내 본연의 삶을 즐길 수 없게 만들고 누군가를 신뢰하거나 사랑할 수 없도록 머릿속을 조종하며, 정직하고 성실한 자를 바보로 만들고 비겁하고 야비한 자를 영웅으로 떠받드는 이상한 기류가 이 시대에 존재하듯이 그도 그 기류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불쌍한 희생양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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