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이 현 시대를 글로벌 시대라고 일컫는다. 2014년 현재도 전 세계 수많은 사람들이 해외여행을 떠난다. 안타깝게도 나의 부모님은 경제적으로 어려워서인지,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인지 모르겠지만, 지금까지 외국에 나가본 적이 단 한번도 없다. 어머니는 외국에 가는 것 자체가 귀찮고 고된 일이라고 여기기 때문에 그리스 해변에 옹기종기 서 있는 하얀 지붕들이나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이집트의 피라미드와 스핑크스 등의 모습이 TV에 나오는 모습을 보면서도 한번쯤은 가고 싶다 거나 하는 생각이 없어 보인다. 반면 아버지의 꿈은 오지탐험이다. 언젠가는 미시시피강의 정글속을 탐험해보고 싶다고 하셨으며, 최근에는 사막지대를 탐험해보고 싶다고 외치곤 하셨다. 계속 외처대는 것을 보아하니 그냥 하는 말은 아닌 듯싶다. 나 또한, 훗날 가게 된 입사 동기와의 캄보디아 여행을 제외하고는 단 한번도 해외로 가본 적이 없다. 그것도 그 양반이 하도 졸라 대기에 휴가 기간동안 별로 할 것도 없을 것 같아서 한번 가볼까 해서 가게 된 것인데 한번 다녀오니 이후엔 더욱 가고 싶지 않았다. 누군가는 나 같은 사람은 여행에 좀처럼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싱거운 도시청년’에 불과하다고 했다.
미팅과 소개팅,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과 일상에 대한 대화를 하다 보면 어김없이 나오는 소재 중 하나는 여행이다. 그것도 국내여행보다는 해외여행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 흥미를 더한다. 물론, 재미없는 젊은이는 여행에 대해서 별로 할 말이 없어서 대충 들어주는 척하다가 다른 내용으로 넘겨버리려 한다. 너나 할 것 없이 일상에서 해방되어 여행을 떠나게 되면 추억을 담아두기 위해서 사진을 찍는다. 추억을 남기기 위해 사진을 찍는 사람들도 있고 이따금씩 즐겁게 찍은 사진을 들여다보며 과거를 회상한다고도 한다. 사람들은 과거를 회상하며 즐거운 기억을 떠올리는 것을 좋아한다.
여행은 도피처 같은 것인가? 혹은 자유롭다고 느끼게 하는 것일 뿐? 어차피 삶은 그대로 흘러간다. 결국은 현실의 족쇄가 더 강하게 느껴지게 되는 독한 와인과도 같다. 만약 여행의 수만큼, 혹은 그 기간만큼 삶에 어떤 특별한 의미를 부여해 준다는 보장이 있다면 주저없이 대출을 내서라도 여행을 떠갈 것이다. 그렇다고 그 시간과 자본으로 딱히 뭔가 의미 있는 일을 해온 것 같지도 않다. 그렇다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의미 있는 삶에서 그 의미라는 말은 무엇인가? 이 무자비한 생각의 구렁텅이에 빠져 들어가면 머리만 아파온다. 항상 그렇다. 결국엔 여행이든 일이든 그 무엇이든 어떠한 ‘의미’라는 것이 생각의 종착점이자, 어떠한 잣대를 평가하는 저울추 같을 것일 테니까.
무엇인가 자랑거리가 될 만한 일들을 중심으로 좋은 추억이라고 일컫는 경향이 있을 수도 있다. 단지, 내게는 별다른 의미 없을 뿐이었다. 물론 몇 일, 몇 년을 가든지 그것이 나의 삶 일부를 바꾸게 만들 계기가 아니라면 말이다. 이런 면에서 볼 때 나라는 인간은 어찌 보면 냉소적이거나 감정이 메마른 사람이라고 볼 수 있기도 하고 굳이 좋게 말하자면, 효율성을 고집하는 사람이라고 볼 수 있겠다. 어떤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나를 행복케 할 수 있는 전율을 느끼고 싶다. 지금은 어느 알 수 없는 미지의 나라에 존재하는 신비로운 A회사에 무언가를 찾기 위해 여행을 온 것이라는 환각을 만들어내려 한다.
- 백야의 그늘(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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