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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부적응자의 직장생활

집필/새로운 소설

by 뚜뚜 DDUDDU 2022. 6. 2.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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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이 바뀌면서 외부 사람들과의 접촉이 잦아졌다는 사실이 몸소 느껴졌다. 오늘 참석했던 세미나 외에도 각종 협회와 교류회, 공공기관에서 주관하는 공청회 따위의 것들도 참석하곤 했다. 그런 공적인 모임에서는 각자가 양의 탈을 쓰고 최대한 매너와 기품이 있는 모습을 보이면서 필요한 내용을 주고받았다. 다양한 외부 모임들은 업무적으로 의미가 있는 것이라고 언젠가 팀장이 말해 주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어느 순간부터는 이 불편한 만남들이 나에게는 별로 흥미가 없다는 느낌이 들었다. 최대한 미소를 짓고, 그들이 듣기 즐거운 얘기들을 해보고, 재미없는 얘기가 나와도 재미있는 반응과 함께 경청해주면 되는 건데 그게 내게는 조금 버거웠다. 날이 갈수록 그런 사람들 중 대다수는 나와는 성향이 맞지 않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게 되었다. 그러다가도 무능하거나 적응 못하는 사람이라는 말이 듣고 싶지 않아서 다시금 공적인 자리에서의 나의 역할에 충실하고자 노력했다.

 

 

무뚝뚝하고 나 이외의 다른 이들에게 관심도 없었던 나를 새로운 사람으로 만들어야 했다. 새로운 자아로 팀에 적응하고자 애썼다. 그 말인 즉슨, 다른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고 자상하고 따뜻한 사람이 되어야 했다. 그럴수록 머리가 아파왔다. 그렇지만 누구나 힘든 것들에 대해서 참아가야 한다고 배웠으며 그게 사회생활이라고 들었다. 나는 완벽하고 능력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고 그동안, 수 년간 그 모습이야말로 멋있는 삶이라고 생각해 왔다. 자아의 혼란과 극단적인 상실감으로 때때로는 절벽에서 울부짖을 수 있겠지만 그것이 나를 위한 최선의 선택이었다. 삶의 무능한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잠시 후에 강사로 보이는 사람이 들어오더니 본인이 준비한 발표 자료를 화면에 띄워 놓고는 강의를 시작했다. 오늘 주제는 조직운영 방법에 관한 것이었는데 주제에 맞게 강사가 자기 회사에서 운영하는 제도에 대해서 설명해주기 시작했다. 주변에는 바쁘게 중요한 내용을 필기하는 사람, 식곤증에 못 이겨 졸고 있는 사람,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는 사람도 있었다. 배움에 대한 자세는 학교에서나 직장에서나 다를 바가 없었다. 

 

 

나도 나름 열심히 듣는 사람의 축에 끼어 보고자 사전에 나누어 주었던 교재와 앞에 띄어 놓은 화면을 번갈아 보면서 강의를 열심히 듣기 시작했다. 듣다 보니 CDP, MBO, 그 밖에 온갖 이해할 수 없는 단어들이 나오면서 이해하기 어렵게 떠들어대는 소리에 도대체 알아먹으라고 하는 말인지도 모를 정도였다. 게다가 강사는 재미교포처럼 평범한 말들도 영어를 섞어가면서 유식함을 뽐내며 강의를 진행했는데 그 목소리가 마치 나에게 영어를 못하면 듣지도 말라고 하는 것 같았다. 젠장, 그의 얼굴은 보아하니 시골에서 갓 상경한 누구보다도 토종적으로 생겼음에도 자랑스럽게 영어 단어를 떠들어 대서 머리가 아파 왔다. 심지어 강의 중간중간에 강사에게 질문을 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억지로 영어 단어를 섞어가며 말하려는 한심한 작자들이 있었는데, 여기가 도대체 한국 땅인지 의문이 들게 만들었다.

 

 

더 이상 듣고 싶지도 않다는 걸 느끼는 순간에 고맙게도 졸음이 쏟아졌다. 방아를 찧듯이 고개가 올라갔다가 다시금 내려가면서 시작된 잠깐의 단잠이 몇 시간을 잔 것과 같은 개운함을 주었다. 잠시 후 북적거리는 소리에 잠에서 깨어보니 이미 첫 강의 시간이 끝났다. 곧바로 이어진 두 번째 시간에는 특정 주제에 대해서 테이블에 같이 앉아있는 사람들끼리 토론해보는 시간이었다. 특정 주제에 대해서 토론을 시작하라는 진행자의 말이 울려 퍼졌다. 내가 앉은 원형 테이블에는 7명의 사람들이 앉아 있었는데 7명 모두 누군가 나서서 진행을 해 주기를 기다리는 눈빛으로 잠시동안 침묵을 유지했다. 그 눈빛들이 겹쳐지면서 어색함과 민망함이 커지고 웃음이 나오기 시작할 때, 용감한 누군가가 말을 꺼냈다.

 

 

“그럼 우리도 한번 얘기를 해볼까요?” 그러자 흰색 셔츠를 입은 젊어 보이는 남자가 기다렸다는 듯이 토론에 불을 지피기 시작했다. “일단은 순서를 정해서 한 명씩 토론 주제에 대해서 얘기를 해 볼까요?”

몇몇이 그러자고 호응했다. 원탁에서 시계방향을 기준으로 한 명씩 얘기를 꺼내기 시작했는데 나는 딱히 할 얘기가 없었기에 관련 업무를 시작한 지 몇일밖에 되지 않아서 그저 배우러 왔다고만 둘러댔다. 열정적으로 토론 주제에 대해서 얘기를 하기도 하고 누군가는 나처럼 대답을 대충 피하기도 했다. 우리들은 더 이상 토론 주제에 대해서 꺼낼 얘기들이 고갈되자 잡담을 하기 시작했는데 주로 회사 생활과 업무가 힘들다는 점에 대해서 시시껄렁한 얘기들을 늘어놓았다. 길었던 토론 시간이 끝나니 진행자가 무작위로 몇 명을 지정해서 각자의 조에서 토론한 내용에 대해서 발표를 시켰다. 지목을 당한 사람들이 한 명씩 나와서 발표를 하고 나면 사람들이 박수를 쳤고 또 다른 사람이 발표를 하면 박수를 쳤다. 도대체 이 토론은 왜 하는 건지 싶은 생각을 하다 보니 또 다른 강사가 들어와서 강의가 한 차례 더 진행되었다. 강의가 끝나면서 세미나의 모든 일정이 마무리되고 부랴부랴 밖으로 나오니 벌써 날이 어두워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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