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은(신림 거리는) 나에게 차가운 도시였다. 부랑자들은 어느 타도시보다 부쩍 더 많은 듯 보였고 모두들 우환이 감싼 듯한 표정을 자아내며 걸어 다니고 있었다. 몇몇은 심지어 화가 난 듯 보였다. 무표정한 사람들과 화난 사람들.
이따금씩 어떤 이들은 나에게 와서 담배를 한 개비씩 빌려가곤 했다. 사람들은 바글바글 했지만 도무지 사람사는 활력은 느껴지지 않는 곳.
대부분은 자신들의 삶이 특별하다고 착각하고 주인공이 되어서 살고 있다. 조금만 상처를 입거나 조금만 마음에 들지 않을 경우에는 영혼에서부터 분노를 표출하곤 한다. 여유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이곳.
잘 사는 것이 무엇인가?
행복은 내 통장 금액에 명시되어 있었다. 분명히 그랬다. 전문직과 공무원을 선호하거나 본인들만의 그룹을 만들어가는 사적모임을 만들어가는 자들은 자기만의 틀을 만드는 우리 안의 불쌍한 강아지 같았다.
휴대전화 안의 기억조차 나지 않는 여성들이 메모리에 저장되어 있다. 하지만 그녀들의 번호를 지우긴 싫었다.
하룻밤을 보냈을 지언정 연락이 안되어도 내 기억속, 혹은 상대방 기억속에 저장될 가치가 있다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 2020 소설을 쓰기 전
초여름 날씨는 매우 좋았다. 특히 어제 약간의 비가 내린 덕분에 공기는 남쪽 어딘가와 같은 느낌이다. 나는 간단하게 채비를 하고 어김없이 내 오랜 친구인 희민이가 사는 백운아파트 근처 PC방을 찾았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곳이 다른 곳보다 편하게 느껴졌다. 최근 몇일 동안은 아침에 일어나서 항상 그곳을 향하였다.
내가 5살때부터 살아온 산곡3동은 인천에서 가장 번화한 곳으로 알려진 부평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었지만(걸어서 2~30분 거리에 불과하다) 주택과 아파트가 밀집해 있으며, 크게 번잡스럽지도 않은 나름대로 평온한 곳이다. 1호선 지하철을 지나기 때문에 교통도 그리 복잡하지 않은 곳이지만 이상하게도 집값은 다른 밀집지역과는 다르게 20여년간 크게 오르지 않는 특이한 공간이었다. 아버지에게 예전에 들은 바에 의하면 우리 가족이 이사 왔던 시기에는 경기도 분당과 집값이 크게 차이가 나지 않았었다고 한다. 어쨌든 도시 같지 않은 도시이며 꽤나 깨끗하고 조용하며 주변이 산으로 둘러 쌓여 있는 이곳을 나는 매우 사랑한다.
10여분을 걸어와서 PC방 자리에 앉았다. ‘게임 존’이라는 촌스러운 이름의 이 PC방 주인은 크게 돈을 버는 것에는 관심이 없는 것 같았다. 다닥다닥 붙어있는 몇 개 되지도 않는 낡은 PC들이 가지런히 줄 서 있는 이곳에는 이른 아침 이 시간엔 노숙자처럼 낡은 점퍼를 입고 있는 노인들과 아저씨 몇 명이 초점 없이 모니터를 들여다보고 있었으며 아마도 몇몇은 인터넷으로 구인광고를 찾는 듯 보였으며, 일부는 고스톱 게임을 즐기고 있었다. 주간에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노인은 내가 입구로 들어서자 살짝 미소를 지어 보였다. 스낵판매대에 있는 홈런볼을 집어 들고 내 전용자리인 가장 구석 좌측에서 두번째 자리에 앉았다.
-2014년 인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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