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거의 죽어가는 생선처럼 아주 가끔씩만 팔과 다리를 꿈틀거렸다. 반송장처럼 힘없는 모습을 보이며 열정과 패기로 미래를 위해 내달렸던 맑은 눈동자는 차갑게 식어 있었다. 내게 더 이상 행복은 존재하지 않았다. 아니, 엄밀히 말하자면 세상이 허락하지 않는 내 헛된 망상과 무수히 겪어온 허무함이 결국 심리적인 고독감을 초래했고, 이상에 대한 철저한 배신감이 입을 굳게 다물게 만들었다. 내가 생각했던 30대의 내 모습은 이게 아니었다. 정말 그랬다. 몇 년 전만 해도, 행복하고 멋진 모습의 직장인을 꿈꾸던 청년이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나를 잃어버리고 껍데기만 남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원래의 내 모습, 내 생각과 자아는 사회에 정착하지 못한 채 변질되어 있었을 뿐이다. 그리고 영원할 것 같았던 내 사람들도 모두 떠났다. 나는 그렇게 절망적인 생각에 휩싸인 상태로 사무실 책상 위의 펜을 만지작거리고 있다.
조용한 침묵이 더욱 평온한 느낌을 주었다. 한참을 멍하니 앉아있다 보니, 부산에서 근무하는 어느 직원에게서 메신저로 연락이 왔는데 그는 본사에서 풍겨져 나오는 재미있는 소식들이 혹시나 있는지 궁금해하고 있었다. 나는 별 일 없다고 대답한 다음 ‘오늘도 파이팅 하세요!’ 라는 지극히 형식적인 메시지를 남겼다. 그리고 새로운 이메일이 열 두건이나 도착해 있었다. 교육 컨설팅업체에서 보낸 광고 메일과 팀장의 업무 지시가 담긴 메일 그리고 동료 직원의 생일을 축하해 달라는 메일, 연구개발 부문에 연구비 관련 정보를 요청했던 메일에 대한 응답이 전부였다.
한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멈춰 있었지만, 내 주변에 앉아있는 다른 직원들은 여전히 기계처럼 자연스럽게 일에 몰두하고 있었다. 가끔 사무실 뒤편의 작은 회의실에서는 시끄럽게 웃는 소리가 문을 뚫고 들려왔다. 나는 오랜만에 몸을 일으켜서 며칠간 정리를 하지 않아서 어지럽혀진 책상을 치워 나갔다. 두번째 서랍에서 물티슈 두 장을 꺼내서 이내 책상의 먼지를 닦아내고는 흩어져 있는 문구용품들을 제자리에 정돈했다. 그리고는 캘린더에 적혀진 일정들을 바라보니 지나오지 않은 날과 지나온 날 위에 적혀 있는 일정들로 빼곡했다. 잠시 고개를 들어서 무표정으로 일을 하고 있는 직원들의 얼굴을 자세히 쳐다보기 시작했다. 그 모습이 너무 웃겨서 혼자 웃음을 터뜨렸다.
잠시 후, 바람을 쐬기 위해서 사무실 밖으로 나섰다. 더위가 한풀 꺾인 이후로는 저녁을 알리는 어둠이 더 이른 시간에 엄습해 왔는데 서늘한 바람과 함께 스며드는 어둠은 언제나 기분 좋은 느낌을 주었다. 퇴근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서 들뜬 기분으로 흡연실에 내려와서 왁자지껄 떠들고 있는 직원들을 피해 구석자리로 들어서고는 담배를 입에 물었다. 거칠게 연기를 내뱉으면서 혼자 멀뚱히 서있는데 무심결에 민들레 두 송이가 발밑에서 눈에 띄었다. 아스팔트 바닥을 뚫고 나란히 서있는 것들에게
서 자연스레 강한 생명력이 느껴졌다. 강한 녀석들이다.
다시 사무실로 올라와서는 새로 뜯은 봉지에서 깨끗한 A4용지를 한 뭉치 꺼내서 프린터 용지 보관함에 끼워 넣었다. 그리고는 깔끔하게 작성한 사직서와 인수인계의 목적으로 작성한 업무매뉴얼을 출력했다. 마지막 최종 면접을 위해 면접장에 입장할 때만큼의 긴장감이 엄습해오기 시작했다. 그래도…… 어쨌든 나는 퇴사를 하기로 했다. 이는 나에게 더 없이 슬픈 결정이다.
- 백야의 그늘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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