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멘탈을 잡는(우울감을 극복하는) 나만의 방법

세상정보/도서리뷰

by 피그말리온(PYGM) 2020. 6. 13. 2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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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애통이 적은 자가 소란스럽게 비난한다.

- 타키투스

 

살다보면 우리는 많은 장벽들에 막힌다.

그리고 그 장벽들을 헤쳐나가기 위해서 다시금 자세를 고쳐앉고 싸워나간다.

결국 극복이냐, 포기냐.

그 선택지에서 우리의 삶의 태도가 완성되며 그것들이 쌓여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지,

아니면 비참하게 만들지를 결정하는 것 같다.

 

하지만 하루하루 자기 자신에게 집중하다 보면 행복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하기는 힘들겠지만...

 

나는 멘탈이 꽤 강한 축에 속한다.

그건 내가 스스로 자위하는 것이 아니라,

주변의 다른 사람들이 나를 평가했던 말이다.

 

남들에게 내 걱정거리에 대해서 논하기보다는 농담조로 떠들어대기도 하며,

내 부정적인 감정에 대해서는 웬만하면 표출하지 않아서 그런걸까?

 

아마도 내 자신이 다른 이들보다는 꽤나 '낙관적'이기 때문인 것 같다.

낙관적인 사람이라는 건

삶의 고난에 크게 동요하지 않는 사람이며,

고난에 크게 동요하지 않는 사람은

그것을 많이 겪어봤거나 극복해 본 사람들일 것이다.

 

물론,

그 고난이라는 크기가 상대적이긴 하지만 말이다.

 

그래서 나는 내 자신이 힘든 상황이라고 인지하는 순간마다

공원을 한 바퀴 돌면서 몇 가지 생각들을 한다.

(어디든 걸어다니며 나 자신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물론, 집안에 있지 말고 밖으로 나와야 한다.)

 

자, 그럼

쓸데없는 혹은 쓸데있는 고민과 걱정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나만의 생각법을 나열해 보겠다.

몇가지는 공감할 수도 있고,

다른 몇가지는 공감하지 못할 수도 있을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되리라 생각하며 그래도 끄적거려본다.

취미활동을 한다거나 하는 것들은 내용에서 제외했다.

단지 생각을 함으로서 극복할 수 있는 방안들일 뿐이다.

 


 

첫번째 생각.

나보다 못한 사람들을 떠올리기


이 무슨 막말이랴!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떠한 부정적인 행동을 하라는 것이 아니다.

단지 생각일 뿐이다.

우리는 그렇게 도덕적이거나 우아한 생물체가 아님을 알아야 한다.

영화, 책, 드라마속 그들을 혹은 주변에 나보다 힘들거나 어려운 이들을 떠올리면서

삶의 열정에 다시금 도화선을 지피는 일은

누구나 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억지로라도 떠올려 보아라.

좀처럼 더 불행한 자들을 찾기 힘들다면

유튜브에서라도 검색해 보아라.

생각보다 어렵게 사는 사람들, 그리고 그 어려움을 극복한 사람들이 수두룩할 것이다.

 

심지어 나의 어머니도 고부열전이나 인생극장, 또는 다양한 TV 프로그램에서

어려움과 절망에 빠진 사람들을 보고는 위안을 얻는다고 했다.

어차피 행복과 불행은 상대적인 것 아닌가!

 

최근들어서 더욱 그런것 같은데,

성공한 자들의 스토리와

몸이 불편한 자, 불행한 사람들의 이야기들이

미디어에 드러나는 비중이 늘고 있다.

(이러한 소스들이 시청률이 높을 것이고,

그만큼 타인을 동정하거나 비난하면서

본인의 자신감과 자존감을 키우고자 하는 내적 성향이 드러나는 양상라고 생각한다)

 

어쨌든 다른 이들을 떠올리면서 위로받아라.

열심히 살아야겠다! 혹은 내 고난은 아무것도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저절로 들 것이다.

 

 


두번째 생각.

최종적인 이상향을 떠올리기, 그리고 그 후의 삶을 그리기

 

그래서 결국 원하는 게 뭔데?

내가 마지막에 원하는 모습, 그리고 최종적으로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게 될 지,

그 모습들에 대해서 머릿속에 자꾸만 그려봐야 한다.

 

그렇다면 현재 내가 해야할 것들에 대해서 해답이 나올 것이며,

그 해답을 따라가기 위해서 자꾸만 정열의 패달을 밟아갈 것이다.

 

우리에게 닥치는 수많은 걱정거리와 난관들 중에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나오는 문제, 또는 선택에 대한 걱정도 있겠지만,

무기력에서 나오는 걱정이 많을 것이다.

어쩔 수 없이 맞닥드린 슬픔은 무덤덤하게 이겨내기 위해 노력해야 하지만

선택에 대한 것들과 무기력에서 나오는, 곧 동기부여의 부재에서 나오는 걱정들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항상 구체적인 지향점이 필요할 것이다.

 

직장내에서의 이상적인 모습 또는 가정적으로의 이상적인 모습,

사업에서의 이상적인 모습 또는 사랑에서의 그 모습 등..

무엇이든 상관 없다.

그저 구체적으로 그려보고 머릿속 또는 노트에 적어보자.

하나하나 차근차근 이겨내 보자.

 

그리고 오늘도 달려보는 것이다.

 

 


세번째 생각.

나 자신은 사실 아무것도 아니다.

 

나라는 존재는 하찮으며 미미하다는 생각

드넓은 우주에 고작 하나의 생물체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가져보자.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는

거대한 우주의 위엄과

생명체의 탄생에 대한 신비로움을 그려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하나의 생명체가 이 우주의 거대함과 긴 시간에서

(심지어 역사의 기간도 우주에선 아무것도 아닌 시간이다)

얼마나 초라하고 보잘 것 없는 존재인지 일깨워주기도 한다.

 

이 말을 왜 하는가?

결국 우리의 걱정과 근심도 내 뇌의 바깥에 나와서 생각해 본다면

아무것도 아님을 느낄 수 있다.

 

굶어죽기라도 하겠는가?

내 주변에서 나를 위로해 주거나 평생 같이해 줄 사람이 그 누구 없겠는가?

(단지, 심각하고 치명적인 건강에 대한 문제라면 미안하다.)

 

사소함에 신경쓸 시간이 우리에겐 없다.

만약 5만큼을 피해봤다고 생각하면 10만큼을 얻을 생각을 하자.

드넓은 우주속의 나 자신이다.

남들보다 무언가가 떨어진다고 생각하지말고 그저 다르다고 생각해라.

정해진 게 있는가? 삶에 정답이 있는가?

내게 닥친 일을 내가, 혹은 타인이 불행이라고 정의내렸기 때문에 그에 따라

슬픔을 느끼는 것일 뿐이다.

 

해결할 수 있는 걱정과 어려움은 이겨나가면 되고

해결할 수 없는 문제는 안고가야 한다. 누구나 문제는 있기 마련이니...

 


 

네번째 생각.

다 안된다면 억지로라도 희망을 가져라.

 

소리를 질러라.

위의 방법들을 써봐도 여전히 우울감을 극복하지 못했다면

그저 소리를 질러보거나 노래를 부르거나 춤을 추어라.

아니면, 허공에 대고 쌍욕이라도 퍼붓거나 잘 될거라고 중얼거려라.

술을 진탕 마셔도 된다.

그저 세상을 향해 한탄해라.

 

나는 주로 노트에 욕을 담았다.

그랬더니 일년새 거의 노트 반권이 채워졌다.

그래서 우울감이 극복되던가?

그건 모르겠다.

하지만 절망적일 땐 뭐라도 해보는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모든 것들에 명확한 방법과 정답은 없다.

한계를 짓지 말고, 너무나 쉽게 판단하지 말고, 완전하게 정의내리지 마라.

 

 

단지, 당신이 가진 이 어려움이

결국엔 당신을 더욱 강하게 만들어 줄 것이라는

그 생각만 가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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